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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미쳐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침부터 깨끗하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구름도 없이 어두워지고 대기 중에는 낯설지만 불길한 냄새가 잔뜩 배어있다. 냄새는 어두운 공기와 더불어 콧속으로 스며들어 폐로 가고, 그곳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다음 몸 구석구석 보내진다. 살갗에선 솜털이 돋아나고 손발이 떨리고 얼굴 근육이 실룩거린다. 

지금 이 시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미쳐가고 있다.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파도가 치고 있다. 억세빠진 손아귀로 모래를 잔뜩 움켜진 황색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좁은 모래사장을 사이에 두고 해안도로를 따라 크고 작은 상가가 일렬로 죽 늘어섰는데, 그 중 포장마차의 펄럭거리는 비닐커버를 모래사장을 넘어온 파도가 낚아챈다. 쫘악 하고 비닐커버가 찢어진다. 

파도가 저리 모래를 뒤집어 업는 것은 지난해 여름, 바다 밑 깊은 곳에 가라앉은 시체를 뱉어내려고 그러는 것인가? 

문득 붉은 살구색의 덩어리 하나가 바닷가로 밀려나왔다. 전체적으로 사람의 형상이었지만 하체는 두 갈래로 찢어지지 않았고 굵은 한 갈래였는데 보기에 고상하고 우아했다. 

사람들이 그 살구색 덩어리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하던 중 그 광경을 보고 구경꾼들 틈에 끼었다. 안목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던 길이었다. 

구경꾼들이 웅성댔다. 그러면서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 년 동안 바다 밑에 잠겨있던 익사체도 아니었고, 사람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사람이라고 주장하기엔 뭔가 색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인간으로 보면 척추가 지나가는 등줄기에 녹색의 긴 지느러미가 붙어있었다. 몸 전체는 반투염의 은색 비닐로 뒤덮여 있었다. 다만 얼굴은 살을 지닌 여느 인간과 똑같아보였다. 

평온하게 감긴 두 눈과 뾰족한 코 그리고 불그레한 입술이 잘 가꿔진 정원 같은 인상을 풍겼다. 더듬이처럼 길게 자란 속눈썹이 마스카라를 칠한 느낌을 주었다. 

저거 인어 아니야?

내 옆에 서있던 중늙은이 낚시꾼이 소리쳤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를 보더니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저건 인어요. 그가 권위적인 교수처럼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낚시꾼 뒤에 서있던 키 큰 횟집주인이 끼어들었다. 

인면어란 고기가 있다는데 본 적은 없지만 저게 그 인면서가 아닌가싶군요. 횟감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짙은 눈썹에 얼굴이 좀 얽은 횟집주인의 목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인면어라... 50평생 낚시를 다닌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고기로서 좋은 이름은 아닌 것 같소. 

또 다른 낚시꾼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우선 신고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낚시꾼 옆에 서있던 젊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남자 옆엔 까탈스런 여선생처럼 생긴 여자가 그의 팔을 잡고 서있었다. 

어디에다 신고를 해야 돼, 그럼? 112? 아님 119?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애인을 보고 물었다. 젊은 남자는 머리를 긁었다. 

간첩이 나타났어, 아님 불이 났어? 이런 건 낚시꾼협회에다가 연락을 해야 한다고. 여기 어디 지부 전화번호가 있을 텐데.

참견하기 좋아하는 중늙은이 낚시꾼이 문어 빨판처럼 주머니가 무수히 달린 조끼를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래 위에 누워있는, 뭐라 규정하기 힘든 살구색 생물을 보았다. 몸집은 어른 크기만 했다. 나는 유난히 하얀 얼굴과 가늘고 긴 손가락을 번갈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보였다. 물갈퀴는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지 찢어질 것처럼 얇았고 불그레했다. 대신 긴 머리카락은 점차 굵은 몇 개의 가닥으로 뭉쳐지는 것 같았다. 굳이 생물학적 성을 부여하자면 암컷, 아니 여자가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 생물은 한 손으로 배꼽 밑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생물은 암컷, 아니 여자밖엔 없다. 

그녀는 수영을 하다가 혹은 바다를 구경 왔다가 파도에 휩쓸렸을 것이다. 애인이 옆에 있었지만 그녀를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파도가 거센 날이었다. 꼭 오늘처럼. 그 때문에 해안경찰이 출동했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은 해변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이틀 뒤 파도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틀 사이 규모가 더욱 커진 수색대는 망망대해에서 좌절감만 맛보았을 뿐이다. 

시간이 흘렀다.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는 무척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그래서 더욱 주변 남자들의 가슴을 달뜨게 했지만 세월은 그들 가슴 속에 아로새겨졌던 여자에 대한 기억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럼 파도에 휩쓸렸던 그녀―이름이 혜정이었다―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혜정은 숨이 막혀서라기보다 공포 때문에 파도에 휩쓸리자마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만약 살려고 발버둥쳤더라면 바닷물을 실컷 들이마시고 숨이 막혀 죽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신을 잃은 덕에 그녀는 천천히 바닥을 향해 가라앉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햇빛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햇빛조차 다가갈 수 없는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심해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심해라는 사실밖에 없다. 그러니까 심해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의 가설, 즉 우리가 경험한 어둠보다 수천 배는 더 어두운 그곳엔 아주 신기하고 신비로운 생명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헤엄쳐 다닐 것이라는 가설 정도는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육지와 바다가 다른 것처럼 심해는 바다와도 전적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우리는 심해를 완전히 알기 전까지는 물에 빠진 이후 혜정의 경험에 대해 콩이니 팥이니 떠들지 말아야 한다. 

자세한 것은 모두 생략하고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았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바닷속 생활에도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하겠다. 

혜정은 처음, 지상에는 그 실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산소만드는고기>―이것은 내가 붙인 이름이다―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생물에 의해 부주의하게 삼켜졌다. <산소만드는고기>는고기라기보단 차라리 공장이었다. 덩치만 해도 공장 몇 개를 합친 크기인 데다가 하는 일이 산소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산소만드는고기>는 느릿느릿, 일 년에 10센티미터 정도 움직이면서 심해의 세계 곳곳에 자신이 만든 산소를 녹여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그렇게 하자면 수천 톤의 물을 한꺼번에 삼킨 다음 뱃속에서 산소를 증가시키는 특수한 소화효소를 섞어서 다시 내보내야 했다. 그 고기가 물을 삼킬 때 혜정이 휩쓸려 들어갔고, 그 고기의 뱃속에서 깨어난 그녀는 산소 부족으로 현기증을 느낄 일은 없었던 것이다. 

혜정은 자신이 거대한 정수장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축축하고 어두침침하긴 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훨씬 나중의 일이었지만, 그녀는 <산소만드는고기>의 호르몬에 해당하는 형형색색의 난장이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지상으로의 귀환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 시작했다. 

<산소만드는고기>의 신경전달물질인 호르몬은 지름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별모양으로 생긴 것이었다. 혜정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호르몬은 아주 핵심적이면서 다섯 가지 이상의 복잡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희귀한 부류였다. 그런 부류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산소만드는고기>의 뇌가 잠에 빠져들면 하나둘 혜정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녀는 지상의 모든 얘깃거리들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혜정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물속에 있음에도 전혀 숨이 막히거나 답답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찾아보았다. 손으로 몸을 더듬다가 턱 바로 아래 목덜미에서 찢어져서 너덜해진 상처를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혜정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여미었다. 그러자 곧 숨이 막히면서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그녀는 그것이 찢어진 상처가 아니라 아가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한 일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렇게 <산소만드는고기>의 호르몬은 혜정의 몸을 몰속에서 생활하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도록 바꾸어주었다. 그러나 혜정은 자신의 몸이 물에 적응하면 할수록 육지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갔다. 

어느 날 바닷물이 <산소만드는고기>의 뱃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입구에서 망가진 빗을 발견했을 때 그 그리움은 감당키 힘들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상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는지 기억해냈다. 하지만 <산소만드는고기>의 호르몬은 그녀가 떠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혜정으로부터 듣는 지상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버렸던 것이다. 







나는 중늙은이 낚시꾼의 고함소리에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니 속고만 살았나.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요? 인어가 맞다니까, 이 양반들아. 

그는 휴대폰에 대고 소릴 질렀다. 낚시꾼협회 지부의 전화번호를 찾은 모양이었다. 

뭐라고요? 회비가 미납됐다고요? 이런 씨발, 회비는 무슨 회비. 인어가 나타났다는데 회비는 무슨 얼어죽을.

그러고는 그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회비 좋아하네, 개새끼들. 지들이 우리 낚시꾼들을 위해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뻑하면 회비타령이야? 사무실에 앉아 온종일 커피나 시켜대면서 노닥거리는 것들이. 제기랄. 다방년들 엉덩이가 그렇게들 좋은지 원. 그런 손으로 집에 가서는 토끼 같은 자식들과 늘어진 마누라 엉덩이를 집적대겠지. 에이, 퉷. 

중늙은이 낚시꾼은 혼자 떠들어댔다. 

그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던 젊은 남자가 무리 쪽으로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아요. 소방서에도 가서 신고를 했고 파출소에 가서도 얘길 했는데 날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고요. 심지어 저한테 거짓신고를 하는 한가한 새끼들은 잡아넣어야 한다고 협박까지 하는 겁니다. 참 어이가 없어서.

남자가 우리 곁에 다가오자 일행인 여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코에 걸린 안경을 매만졌다. 

자기 괜찮아?

여자가 물었다. 

우선은 저 물체가 무엇이건 간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열에 들떠서 말했다. 소방관이나 경찰관한테서 받은 모욕 때문인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가 덧붙였다. 

저것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저명한 어류학자들한테 맡기고 말입니다. 

그때 횟집주인이 정색을 하고 나섰다. 그는 어느 틈엔지 벌써 한손에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살구색 물체에 다가가 등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드리다 보면 살아있는 것인 한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하겠지요. 

누군가를 흉내 내는 듯한 부자연스런 말투로 그가 말했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한껏 빼고 언제라도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해서는 노친네들 새벽잠도 깨우기 힘들겠소. 

중늙은이 낚시꾼이 횟집주인의 소심성을 질책했다. 그리고는 사내 뒤로 재빨리 다가가더니 자신의 엉덩이로 그의 엉덩이를 힘껏 밀어버렸다. 

악!

횟집주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살구색 물체를 가까스로 피해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놀랍도록 민첩한 동작으로 일어나서는, 자신이 넘어진 것 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낚시꾼에게 다가갔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요? 까딱하면 저 괴물한테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나를 그 아가리 쪽으로 밀어요?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양반이오? 

그가 너무 험악하게 몰아붙이자 낚시꾼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자네, 어른한테 너무 그러네. 장난삼아 한 일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거 뭐 있나? 내가 다른 횟집 한 번 안 가고 자네집만 죽 드나든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네.

낚시꾼은 능글능글 웃으며 비굴하게 말했다. 

이런 씨바. 나도 나이라면 먹을 만큼 먹었다. 나이 먹은 게 무슨 벼슬이냐? 어른이면 어른답게 처신을 해야지. 그리고 참 말 잘했다. 우리집에는 반찬이나 얻으려고 들락거렸지, 지난 삼년간 회 한 사라 팔아주는 꼴을 못 봤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앞으로 우리집엔 절대 오지 마. 알아들어? 

횟집주인은 돌아서 갈 듯하다가 다시 목청을 돋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있으니 누굴 가마니로 알어? 낚시는 무슨, 남의 고기나 훔치는 주제에. 점잖은 사람 성질 건드리지 말어, 알았어?

처음에는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려고 다가서던 구경꾼들은 상황이 워낙 분명해지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자네, 말 다했나? 

낚시꾼이 말했다. 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금방이라도 흐를 것만 같았다. 

다했다면 어쩔 건데? 한 대 쳐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리고 말끝마다 자네 자네 하는데 난 당신 자네 아니니까 그 따위 돼먹지 않은 소리 작작 지껄이라고. 

말을 마치기 바쁘게 낚시꾼이 횟집주인을 향해 무소처럼 달려들었다.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긴 했지만 너무 둔해서 횟집주인은 느긋하게 옆으로 피했다. 

얼씨구. 이건 또 뭐하자는 거야, 응? 참 여러 가지 하네.

낚시꾼이 다시 그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횟집주인은 가볍게 피했다. 그러자 낚시꾼은 다시 달려들었다. 두 사람 때문에 모래사장은 갑자기 투우장처럼 바뀌어버렸다. 구경꾼들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둘러쌌다. 







나는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와 살구색 생물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까 횟집주인이 쓰던 나무막대기를 집어들었다. 닿을 만큼 다가가서 막대기를 내밀려는 순간, 그것이 번쩍 눈을 떴다. 나는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는 얼른 피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숨이 막혀요. 

그것은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고 그것도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구경꾼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이쪽 상황은 잊은 채 싸움 구경에 열을 올렸다. 언뜻 보니 아까 상황과 변한 게 전혀 없었다. 중늙은이 낚시꾼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고 횟집주인은 느긋하게 피하고...

나는 용기를 내 살구색 생명체에게 좀 더 다가갔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인간입니까?

내가 물었다. 눈이 몹시 아름다웠다. 다시 보니 눈꺼풀은 살이라기보다 젤리 같은 느낌이었고 아주 얇고 반투명 상태였다. 

한때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냥 인어라고 생각해주세요.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살려주시면 나중에 다시 만나 다 얘기해드릴 게요. 

내가 어떻게 해주면 돼요?

나를 물속으로 넣어주세요.

나는 망설였다. 이 희귀한 생명체를, 그것도 인어라고 하는 신화 속의 존재를 영영 사라지게 도울 것인지 쉽게 결심이 서지 않았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잘린 일도 있지 않은가? 11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그동안 문제가 있었다면 회사 측에 있지 나한테는 없다―다닌 회사에서 잘린 것 순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일 때문이었다. 

입사한 지 일 년도 채 안 된 신입여사원이 나를 사내 성추행으로 감사실에 고발한 것이다. 이 문제라면 난 결백하다. 우린 그저 진화론에 관한 입씨름을 좀 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니 입씨름이 좀 심했던 것도 같다. 실랑이를 벌인 문제는, 왜 인간은 하나가 아니고 볼품없는 두 다리처럼 남자와 여자로 갈라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신입여직원은 헤르마프로디테가 달팽이나 지렁이들처럼 징그러운 생물들한테나 발견되는 원시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어떻게 인간이란 고차원적 존재와 비교할 수 있냐는 거였다. 나는, 우선 헤르마프로디테의 뜻을 묻고는 그것의 뜻이 자웅동체란 것을 알았다. 뜻을 알려주어 고맙지만 그래도 헤르마프로어쩌고가 원시적인 형테란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 인간이 그 징그러운 생물들보다 진화가 덜 됐단 말이에요? 

여직원은 매운 고추 서너 개를 연달아 먹은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져 갖고 소리쳤다.

나는 그 생물들과 인간을 비교할 마음은 없다고 전제하고, 다만 같은 인간으로 볼 때 우리처럼 분리된 것보다는 헤르마로 합쳐진 것이 여러 면에서 발전된 형태일 것이라고 고집했다. 

이 대리님과 저요? 세상에,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녀는 커다란 모욕이라도 받은 것처럼 억울해했다. 

이게 전부다. 그런데 성추행이라니! 처음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었으므로 난 내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사실 직원들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난 왜 그들이 무턱대고 여직원 편을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입사한지 일 년도 안 된 신입여직원을 말이다. 지금 당장은 인어를 살리는 일이 급선무이니 이 일에 관해선 나중에 다시 발표하겠다. 망할 년 같으니라고.







당신을 살려 보내면 두 번 다시 당신을 볼 수 없겠지요?

내가 말했다. 

아뇨. 매월 그믐날밤 당신을 보러올게요. 약속해요. 

어떻게요?

당신은 잠이 들죠? 깊이 잠이 들면 무의식에 빠지게 될 거예요. 그곳은 심해처럼 어둡고 아주 신비로운 곳이죠? 그럼 제가 당신을 만나러 당신 무의식 속으로 헤엄쳐갈게요.

아!

그렇게 감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지금 당장 절 도와주지 않으면 전 죽게 돼요.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하세요. 아무튼 결정을 내려줘요. 이제 더 말할 기운이 없어요. 절 살리든가 죽이든가 당신 맘대로 하세요.

인어는 점점 숨소리가 가빠지고 거칠어졌다. 나는 다시 구경꾼 쪽을 돌아보았다. 그토록 쉽게 결판이 날 것 같더니 상황이 점점 꼬이는가 보았다. 

나는 인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인어를 안아 올렸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과 팽팽한 탄력감이 온몸에 전해졌다. 나는 한 마리 돌고래를 안은 느낌이었다. 

이름만이라도 가르쳐줄 수 있어요?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혜정이에요. 혜정.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졸업하고는 은행에 근무했어요. 

그녀를 안아 올리자 지금까지 모래에 파묻혀있어서 볼 수 없었던 그녀의 하체 끝부분이 드러났다. 꼬리지느러미는 마치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펼친 것처럼 크고 아름다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속으로만 간직해오던 비밀, 가까운 친구들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때가 아니라면 두 번 다시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에.

저는 두 갈래로 찢어진 다리가 싫어요. 당신처럼 한 가닥으로 된 다리가 정말 부러워요. 찢어진 다리로 태어났으니 그렇게 사는 거죠. 하지만 다음엔 당신처럼 바닷속에서 태어날 겁니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끝낸 상태지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자가 눈을 치켜뜨면서 물었다. 더듬이처럼 긴 속눈썹이 머리칼처럼 바람에 날렸다. 

고래요. 

고래요?

네. 전 그토록 커다란 덩치로 플랑크톤을 먹는다는 사실에 완전 반해버렸거든요. 전 고래의 유연함과 여유, 그리고 평화로운 식성이 부러워요. 

여자가 해맑게 웃었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숨이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난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저 놈 잡아, 인어를 풀어준다.

인어는 내 꺼야. 냉큼 돌아오지 못해.

사진이라도 찍고 보내줍시다. 

어이, 그만 돌아와. 지금 당신 큰 실수하는 거야.

콩밥 먹고 싶어? 한창 땐데 장래를 생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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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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